7월 1호

  극 중 여자와 남자는 서로에게 자꾸 '생각해보라고' 해요. 단순히 말을 뱉어내기만 하지 말고 '생각을 해보고' 말을 하라고 하죠. 실제로 그들은 자신들이 책도 읽고 뉴스나 다큐도 보며 어느 정도 수준 있는 '생각'이 가능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그들은 단순히 생각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도 하죠.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 환경을 위해서 말이에요. 그리고 그들은 그런 행위를 하는 자신들을 보며 나름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답니다.

  

  하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생각’을 하고 그걸 행동으로 매번 임하는 것이 과연 '좋은 사람'을 만드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해요. 이 세계가 멸망하는 걸 막기 위해 하고 있는 ‘좋은 행동’이 혹시 자신의 세계를 되려 멸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해요. 

  사실 생각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에요.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해 보이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렁스>의 여자와 남자는 생각을 너무 하다 보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론이 종종 비관적인 쪽으로 흘러가곤 해요. 사실 긍정적으로 끝맺는 때가 훨씬 적다고 할 수 있어요. 이 세계를 발전시켜 나가려면 누군가는 그 '생각'을 해야만 하는데, 이게 참 모순적이에요. 누군가가 생각을 해야만 이 세계가 보존될 방법을 강구할 수 있는데 그 생각은 개인의 세계를 갉아먹기 참 좋으니까 말이에요.

  극이 3/4쯤 진행되었을 때 여자와 남자는 결별하고 몇 년을 떨어져 지내게 돼요. 몇 년 후 다시 만났을 때, 헤어져 지낸 기간 동안 남자는 언젠가부터 뉴스나 책 보기를 안 한다며 '생각하기'를 멈췄다고 고백해요. 여자도 어느샌가 동네 카페가 아닌 '스타벅스'를 이용하고 있죠. 물론 그들의 행위는 환경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아니, 확실히 도움은 안 돼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그들이 '좋은 사람'이 아닌 걸까요? 적어도 그들은 뭔가 후련해 보였고, 무언가에서 해방된 것 같아 보였어요. 강박에서 벗어나니 훨씬 더 여유로워 보였다고 할 수 있죠. 그런 점에서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혼자만 편하기 위해서’ 일회용품을 남용하고, 환경문제를 등한시하고, 아동 노동 착취 등의 문제를 침묵하자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너무 많은 생각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땐, 잠깐 쉬어가는 건 어떨까요? 언젠가 모든 생각과 행동이 ‘강박’처럼 느껴질 땐, 잠시 모든 걸 놓고 한숨 고르고 가보는 거예요. 마음을 정리하고 몸을 쉬게 해주는 거예요. 그 뒤에는 어쩌면 자신이 희망하는, 또 세계가 환영하는 ‘좋은 사람’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공연이 끝나고 에디터들이 입을 모아 말했던 건, 연출이 독특했다는 점이었어요! 저는 공연을 보고 나서 가장 궁금했던 점이 '무대 중간중간 배우들이 벗어놓는 신발들의 의미는 무엇일까'였어요. 원래 한국에서의 초연에서는 하얀 운동화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화, 구두와 아기 신발이 등장했다가 올해에는 하얀 가죽 운동화로 통일이 되었는데요. 신발의 종류가 바뀐 것으로 보아 어떤 신발을 내려 놓느냐가 중요하기보다는 신발을 내려놓는다는 행위 자체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결론적으로 제가 나름대로 해석해 본 운동화를 내려놓는 행위의 의미는 ‘기억의 키프레임’으로서 역할한다는 것이에요.😃 그리 중요한 순간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인생의 구간들이 있곤 하죠. (저는 이상하게 비오는 날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장면이나, 카페에서 눈이 내리는 걸 바라보던 게 가끔씩 생각이 나요.) 그런 것처럼 신발을 내려놓는 지점은 훗날 과거를 회상했을 때 기억의 거점이 되는 그런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유산을 겪고 난 후 무대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걷던 여자의 표정에서 허무함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기억의 키프레임’을 되짚어 구간을 머릿속으로 재생하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을 떠올리고, 상실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너무 들떠 있던 내 자신이 미워지기도 하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를 생각해보며 이쪽과 저쪽 기억 사이를 뱅뱅 도는거죠. 저희 에디터인 ich님은 남자가 죽은 이후의 남자가 무대에서 내려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신발을 쳐다보면서 걸어갈 때 제가 느낀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다고 했는데, 이처럼 공연 전반에서 둘의 추억을 되짚는 모습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솔직히, 함부로 추측하긴 어려운 주제 같습니다🤣 하지만 재회 후에 다시 관계가 이어질 때, 가장 행복했었던 아이와의 신발이 있는 공간으로 가 배우들이 어깨를 맞대고 앉는 것을 보면서 저는 '아이를 처음 가졌을 순간의 기억으로 돌아갔구나', '다시 두 사람이 그때의 설렘을 갖고 앞날을 기대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 이야기의 끝이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가 아니라 실제로 어쩔 수 없이 맞게 되는 이별(사별)의 순간까지 부부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담아낸 게 저는 너무 좋았어요. 사실 어떤 연인 관계이든, 끝은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오래된 연인이랑 보러 갔다면 '우리의 끝은 어떻게 마무리할지' 이야기할 거리가 많았을 것 같은 좋은 공연이었습니다. 애인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는 저도 보면서 마음이 아려오는 연극이었어요. 꼭 오래된 연인과 함께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어서, 혼자 보러 가시는 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 😆

그럼 28일 수요일에 7월 2호로 또 만나요 ~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