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주 빠르게,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세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거쳐 우리의 귀로 흘러들어오게 되죠. 그리고 각자의 의견들이 여러 입을 통해 나와요. 이전이었으면 큰 관심을 받지 못했을 사건이 여러 사람 입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오랫동안 주목받는 경우가 생기기도 해요.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요. ‘화이트베어’는 후자의 단면을 보여주는 드라마인 것 같아요.

  주인공은 자신을 죽이려는 이들에게 쫓기고 있어요. 그냥 쫓기기만 하면 차라리 나을 텐데 가는 길마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자신의 모습을 찍고 있어요.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지 않고, 수많은 렌즈와 눈이 자신을 관찰하고만 있죠. 익명의 다수에게 받는 시선은 사람을 금방 불안하게 만들어요. 주인공은 최선을 다해 도망치지만 절대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매일 똑같은 하루를 겪게 되죠. 사실 주인공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만 없다면 현실에 비해 나은 상황인 것 같기도 해요. 무언의 압박만 받을 뿐이고 기억은 지워지니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사건은 한 번 ‘박제’되면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어요. 이야기 소재거리 중 하나가 되죠. 심지어 말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게 거짓된 사실이 덧붙여질 때도 있고요. 분명 다양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데 어느샌가 공통된 여론이 생겨요. 사람들은 금방 잊는다고 말하곤 하지만 다시 불타오를 만한 조금의 불씨는 남겨두고 있죠. 당사자는 불안할 거예요. 새로운 누군가가 다시 이 사건을 알게 되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면 자신도 또다시 그 굴레에 씌워지니까요.

  우리는 언제까지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은 언제까지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요? 끝없이 이어지는 그 이야기는 오늘날의 또 다른 형벌일까요? 그렇다면 그 형벌은 ‘우리’가 내릴 수 있는 형벌일까요?

  이번 에피소드를 시청하며 저는 두 가지의 상반된 감정을 느꼈어요. 바로 통쾌함과 불쾌감입니다. 얼핏 보면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들을 왜 동시에 느끼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한번 정리해 보았어요.

  화이트베어에서 가장 통쾌했던 점은 주인공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치르고 있다는 점이에요. 우리 사회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존재해요. 그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형벌을 받지 않는 사례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죠.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화이트베어’는 범죄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점에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피해자가 겪었을 공포와 고통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한다는 설정은 답답했던 현실의 상황을 잠깐이나마 뚫어주는 통쾌함을 선사하는데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드라마 속 주인공을 열심히 응원했어요. 이 끔찍한 상황으로부터 빨리 탈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였어요. 내가 믿고 응원했던 사람이 알고 보니 범죄자였다는 사실에 저는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화이트베어에서 이런 반전이 큰 배신감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바로 스토리 안에 존재하는 상황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주인공이 위험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돕거나 상황을 중재하려 하지 않아요. 그저 카메라가 달린 전자기기를 들고 촬영을 할 뿐이죠. 물론 드라마는 과장된 모습을 보이지만 우리는 이와 비슷한 일들을 이미 겪고 있어요. 타인을 몰래 혹은 거리낌 없이 촬영하며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단 하나의 오락거리처럼 즐기는 상황, 어딘가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이미 존재하는 사회의 모습은 화이트베어 속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겠다는 가능성으로 확장됩니다. 그렇기에 저는 주인공을 더 열심히 응원했는지도 몰라요. 내가 느끼는 기시감과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충분히 현실성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얼른 도망쳐!”를 외쳤던 것이죠. 그리고 이 때문에 배신감은 한층 더 크게 다가왔던 거예요.

  범죄자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고 끝까지 처벌받는 통쾌한 사회가 될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인간성의 타락으로 인한 공포와 불쾌감의 연속인 사회가 될지 앞으로의 우리 사회 모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눈백이 여러분들도 화이트베어를 통해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느껴보길 바라요.통쾌함과 불쾌감, 우리 사회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해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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